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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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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사업의 약사

박 대통령이 집권하기 직전까지 미국은 매년 2억 달러 상당의 원조를 제공했다. 그중의 78퍼센트는 잉여농산물, 유연탄, 석유를 포함한 소비재였다. 정부는 이것을 시장에 팔아 그 돈으로 정부예산을 조달했다. 이는 당시 대충 자금으로 불렸다. 당시 연간 무역 적자액 규모는 5천만 달러였다. 박 대통령은 비전 없는 폐가로부터 경제적 기적을 이룩했다. 이는 세계 경제 교과서에 하나의 모범적 사례로 인용돼 왔다. 그 결과 한국군은 미 군원을 청산하고 국방비를 자체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한국군의 봉급까지도 미국 원조에 의존했었다. 1970년에 국방비는 2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0년의 국방비는 38억 달러나 되었다. 1970년을 전후하여 한국에는 북한의 연속적인 도발 행위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1968년 1월 21일에 있었던 김신조 사건과 1월 23일에 있었던 미정보함 프에블로 호의 납치사건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영원한 혈맹’ 미국이 북한에 대해 상당한 경고 조치를 취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를 도와주기는커녕 아시아에서 더 이상의 짐을 지지 않겠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는 우리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자 배신 행위였다. 이로부터 박 대통령은 ‘자주 국방’을 기치로 내걸고 전력 증강 사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제1차 전력 증강 사업이 1974~1981의 8개년 계획으로 시작됐다. 이 때부터 전력 증강 사업은 강병론자의 상징인 율곡 선생의 이름을 따서 율곡 사업으로 명명되었다. 박 대통령은 국방비를 GNP의 4.5퍼센트 수준으로 올릴 것을 파격적으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8개년 간 총국방비는 88억달러로 예상됐다. 이러한 국방비 증가는 누구의 눈에나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 속도는 그 자신도 예측하지 못할 만큼 빨랐다. 88억 달러로 예상했던 8년간의 총국방비가 실제로는 190억3천만 달러나 된 것이다.

제1차 율곡 사업 기간인 74년에서 81년까지의 율곡사업비는 국방비의 17%에 해당하는 15.3억 달러로 계획됐었다. 그러나 이 역시 예상외의 경제 성장으로 인해 60.3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는 국방비의 32%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군 간부들의 의식과 경영기법을 가지고는 이 큰돈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 많은 낭비가 있었지만 그 때까지 미군이 대주던 물자만 사용해 왔던 군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던 일이었다. 제2차 율곡 사업은 82년에서 85년까지의 4개년에 걸쳐 계획되었으며 사업비는 50.3억 달러였다. 그 후 미국 국방성의 새로운 경영기법인 PPBS가 도입되면서부터 율곡 사업 계획은 몇 차 몇 개년 계획 식으로 하지 않고, 소위 PPBS(기획-계획- 예산시스템)주기에 따라 연동제로 계획되어 왔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PPBS라는 최첨단 경영 기법을 도입한 곳은 당시 군뿐이었다. 율곡 사업 예산은 82년도에 10억 달러 규모에서 1985년에는 15억 달러 그리고 93년엔 37억 달러 규모로서 매년 경제 성장 속도만큼 확장돼 왔다.

율곡 사업의 계획과 통제는 청와대에서 주관했고 소요 제기는 군에서 담담했다. 청와대 통제단은 경제팀인 오원철, 김광노, 이석표로 이루어졌다. 1976년에 청와대 오수석은 세 개의 대형 사업을 거의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하나는 374대의 이탈리아형 장갑차를 기술 도입 생산하기 위한 사업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219대의 500MD 헬리콥터를 기술 도입 생산하기 위한 사업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68대의 F-5기를 국내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세 가지 사업은 부실의 대표작이었다. 기술 도입 생산의 허구성에 대한 전형적인 케이스였으며 그만큼 오수석은 군에서 많은 원망과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오수석이 옳았는지 군 여론이 옳았는지는 누구도 규명해 본 적이 없다.

당시 군은 주한 미군이 1970년대 말까지만 주둔할 것이라는 매우 위급한 가정 하에 애매하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전력증강 목표를 단계적으로 제시했다. 70년대에는 방위 전략, 80년대에는 억제 전략 그리고 90년대에는 공세 전략의 능력을 보유하도록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까지도 남북한간 상대적 전력은 별로 변화되지 못했다. 제1차 율곡 사업 기간인 8년 간, 1985년도 물가로 환산하여 90억 달러라는 엄청난 율곡 예산을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간 전력 격차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화력지수라는 극히 산술적 비교 방법에 의하면 1974년 육군 전력은 북한 육군 전력의 50여 퍼센트였으나 8개년 간 겨우 1.2퍼센트만큼 만회했을 뿐이다. 같은 방법으로 해군은 1974년의 40퍼센트 미만에서 1981년까지 9.5퍼센트만큼을, 그리고 공군 역시 40퍼센트 미만에서 1981년까지 4.3퍼센트만큼을 만회했을 뿐이었다.

1974년에는 1억달러가 투자되어 소화기, 105밀리 곡사포, 고속정, 해공군 유도탄들이 구입됐다. 1975년에는 3억달러가 투자되어 나이키, 호크, 대전차 유도탄, 발칸포, 팬텀기들이 구입됐다. 특히 1975년도에는 월남 패망, 김일성 북경 방문, 10월 위기설 등으로 긴장이 가장 고조된 시기였으며 그 결과 박 대통령은 전력 우선순위를 방공력, 공군력, 예비전력, 해군 전력, 육군 전력 순으로 정했다.

이러한 우선순위에 육군은 불만이었다. 그 후 전력 증강비는 역시 육군 위주로 할당되어 갔다. 제1차 8개년 예산 계획에는 육군 43퍼센트, 공군 37퍼센트 그리고 해군이 20퍼센트였으나 막상 사업이 집행된 이후의 결과는 육군 53.3퍼센트, 공군 27.4퍼센트 그리고 해군이 19.3퍼센트였다. 1976년에는 6.3억 달러가 투자되어 이탈리아 장갑차, M48전차, 헬기, 구축함, F-5기 공군레이더들이 구입됐다.

1976년에는 북한의 AN-2, 전차, 잠수함에 대한 위협이 강조되었다. 1977년에는 7억 달러가 투자되어 155밀리 개량포, 전차, 방공 자동화 장비, 다연장로켓포들이 구입됐다. 그러나 1978년부터 1981년까지 4년간의 투자는 주로 부대 증찰설을 위한 기지 건설에 사용됐다. 북한에 대한 정보는 미국이 독점해 왔다.

1979년 미국은 북한전력이 갑자기 증강되었다는 내용을 한국 정부에 제시했다. 북한 전력 중에서 가장 위협적으로 부각된 것은 주로 육상 전력이었다. 기계화 사단, 방사포, 전차, 특수 여단들이었다. 이로 인해 전력 증강비는 육군에 더 많이 할당되기 시작했다. 1~2차 율곡 사업 기간인 74년부터 85년까지 12년 간 투자된 총 율곡 사업비는 경상가로 110.5억 달러였으며 이는 1985년도 불변가로 148억 달러에 해당했다. 이후 전력 증강비는 1980년대에 연간 평균 15억 달러 그리고 1990년대에 연간 30억 달러 규모로 투자돼 왔다.

1985년까지 12년 간 투자된 전력 증강비는 1985년 불변가로 쳐서 150억 달러였다. 이는 북한 전력비의 두 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투자를 가지고도 전력 지수라는 평가 방법에 의하면 육군 전력은 북한 육군 전력의 60퍼센트 수준에 그쳤고, 해군은 59퍼센트 그리고 공군은 60퍼센트 수준에 머물렀다.

물론 이러한 비교 방법이 지금은 더 이상 합리적인 비교 방법은 아니지만 우리의 국방 관리 방법이 극히 허술하다는 사실을 암시해주는 지표임에는 틀림없다. 그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략의 부재이며 다른 하나는 낭비에 가까운 투자비 관리 방법 때문이다. 한국군은 한국군 고유의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실제적으로는 미군의 종속적인 군사력밖에 건설하고 있지 못하면서 목표는 언제나 독자적인 전력을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한국군은 정보와 작전 능력을 아직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면서도 기구만 키우고 무기만 사재기해 왔다. 정보와 작전 능력이 없다는 것은 무기 선택을 산만하게 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력 증강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 수를 따라가려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우 진영의 무기는 금박의 무기라도 불릴 만큼 비싼데다가 속고 바가지 쓰기가 예사였다. 그나마 어설픈 국산화라는 명분 하에 같은 무기를 해외 도입 장비의 2배 이상으로 구입했기 때문에 한국군은 그 많은 율곡 예산을 가지고도 북한과의 전력 격차를 줄일 수 없었다. 한국의 방위 산업업체는 초창기에는 많은 공헌을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형 업체를 중심으로 각종 비리와 낭비가 증폭되어 왔다.

1970년대의 육군 사업은 부대 창설비, 방공포, 전차, 탄약, 노후 장비 교체, 총포, 전술공사, 헬기 사업 순으로 구성되어졌고 해군은 고속정, 초계함, 구축함, 기지 건설, 유도탄, 상륙전 장비, 통신 장비, 레이더 사업들로 구성되었으며 공군은 제공호, F-4E기, F-16기, 기지 건설, 방공 자동화, 자동 항로 관제, 레이더, 통신, 수송기 사업들로 구성되었다.

1980년대의 육군 사업은 다연장포, 대전차 유도탄, 한국형 전차, 155밀리 자주포, 장갑차, 헬기들이 주종을 이루었고 공군은 레이더, F-16기 직도입, 방공 자동화, F-5기, 팬텀기(F-14)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해군은 고속정, 초계함, 구축함, 함대함유도탄들이었다.

1990년대의 육군 사업은 전차, 자주포, 대규모 헬리콥터 사업이 진행중이고 공군은 팬텀기 성능 향상, 훈련기 직구매, 훈련기 개발, 차세대 전투기로 모든 예산을 메워 가지고 있으며 해군은 구축함, 잠수함, 대잠초계기, 해군 자동화 사업들을 추진해 가고 있다.

1978년까지의 전력 증강 사업은 국내 구매와 해외 직구매비가 50대 50으로 반반 수준이었다. 이 때의 국내 구매비는 박격포, 트럭, 야전 소화기, 소화기, 기지 건설 등 기술 수준이 낮은 장비를 위해 지출되었으며 해외 구매비는 주로 공군과 해군이 필요한 기술 장비를 위해 지출됐다.

1979년부터는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해외 직구매비가 점점 더 하락하고 국산화 예산이 점점 더 상승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한국의 방위 산업 기술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태평양으로 건너간 돈은 국내에 남은 돈의 2배 이상이다. 군은 한국 방산 업체에 사업비를 지불했다. 그러나 업체가 받은 돈의 대부분은 해외 부품을 직구매하는 데 사용됐다.

대기업에게 국산화가 몇 퍼센트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70퍼센트 이상이라고 대답했다. 하청 업체에게 지불된 돈을 그들은 국산화로 치부한 것이다. 그러나 하청 업체는 거의 100퍼센트의 부품을 직도입했다. 기술 장비의 국산화란 말은 그럴듯해도 대기업과 하청 업체들이 공평하게 국방비를 나누어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정부 공사치고 낭비와 유실과 부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율곡 사업비도 예외는 아니다. 치부를 일삼는 사람들이 그들이 주머니 속으로 빼내가는 돈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수천-수만 배의 규모로 낭비되는 예산은 누구의 주머니로도 들어가지 않는 돈이다. 구조적인 낭비다.

이는 창의적인 시스템에 의해 예방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시스템을 고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누가 얼마를 먹지 않았겠느냐에 관심을 가져왔다. 개선은 없고 불신과 인격 격하 현상만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돈을 받아먹은 사람으로 보여 졌다. 국민 시각 전체에 불신병이 퍼졌다. 지혜로운 사람은 보이는 현상보다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더 중요시 한다. 지금 우리는 시스템 부재로 인해 사회가 보이지 않게 파괴되고, 국가 자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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